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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두 태양 사이에서 갈팡질팡

추석 연휴 극장가 박스오피스의 승자는 ‘남한산성’이다. 1636년 병자호란을 다룬 김훈의 소설이 원작이다.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지는 명(明)과 뜨는 청(淸). 두 태양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게도 구럭도 다 놓친 조선의 서글픈 역사가 아득한 과거로 여겨지지 않았다. 현실을 수용하고 훗날을 도모하자는 주화(主和)파와 명분을 저버리고 현실과 타협할 수 없다는 척화(斥和)파의 대립은 오늘도 진행형이다. 
  
2017년 10월 지금, 그것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한국의 처지일 수 있고, 핵무기를 손에 쥔 북한에 대해 강압과 대화로 갈라진 우리의 현실일 수 있다. 한·미 공조를 앞세운 동맹파와 운전자론을 외치는 자주파의 대립일 수 있다. 척화파의 영수 김상헌과 주화파의 영수 최명길의 대결에서 보듯 어느 쪽도 정답이 아닌 만큼 오답도 아니다. 가치관과 신념이 달랐을 뿐이다. 외세에 의해 나라의 안위가 바람 앞의 등불이 되면 명분과 실리에 치우친 두 견해가 대립하기 마련이다. 
  
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인조가 대국(大局)을 살피며 좀 더 기민하게 대처했다면 ‘오랑캐 나라’ 임금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리는 수모와 치욕은 면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대의명분도 좋지만 최대 피해자인 백성을 먼저 생각했다면 한발 물러서서 유연성을 발휘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힘에서는 밀리더라도 돌팔매로 골리앗을 상대한 다윗의 기개로 회심의 ‘한 방’을 준비했다면 그처럼 어이없이 당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다 버스 지난 다음 손 흔드는 격이다. 

  
지난 5월 타계한 미국의 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생전에 미국에 의존하는 한국이 고립무원의 처지가 됐을 때 택할 수 있는 세 가지 옵션을 제시했다. 동아시아의 패권이 중국으로 넘어갈 경우를 상정한 어드바이스였다. 첫째, 중국의 패권을 인정하고 속국으로 사는 길이다. 자존과 독립은 훼손되겠지만 망하지는 않는다. 둘째, 일본과 손잡고 중국에 대항함으로써 자존과 독립을 지키는 길이다. 셋째, 자체 핵무장을 통해 홀로서기를 도모하는 길이다.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