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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면세점 ‘황금 알을 낳는 거위’에서 ‘적자(赤字)를 낳는 애물단지’

서울 시내 한 면세점 잡화 코너에서 근무하는 A 씨(45·여)의 표정은 어두웠다. 적지 않은 나이로 여러 매장을 거쳐 온 ‘베테랑’인 그도 처음 겪는 분위기라고 한다. A 씨는 “중국인 고객들이 썰물 빠지듯 빠졌다”며 한숨을 쉬었다. 지난 주말 이야기다.

중국 정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한반도 배치에 대한 보복으로 15일부터 자국 여행사의 한국 여행 상품 판매를 금지했다. 그 후 맞은 첫 주말이 18, 19일이다. 롯데면세점과 신라면세점은 이 이틀간 매출이 지난해 3월 셋째 주 주말보다 20∼30% 줄었다. 그나마 15일 이전에 입국한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남아 있을 즈음인데도 상황이 그랬다. A 씨의 걱정처럼 면세점 일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다.

지난해 초만 해도 면세점은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불렸다. 하지만 요즘 같아서는 ‘적자(赤字)를 낳는 애물단지’가 따로 없다. 유통업계에서는 지난해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 전쟁의 승자는 경쟁에서 탈락한 SK그룹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중국 정부의 한국 여행 제한 조치에 늦가을 나뭇잎처럼 흔들리는 것이 ‘세계 1위’라는 한국 면세점 산업의 현주소다.

사실 지금의 위기는 정부와 유통업계가 자초한 셈이다. 면세점 허가권을 쥔 관세청은 질적 성장 대신 숫자 늘리기에 치중했다. 2014년 6개, 2015년 9개이던 서울 시내 면세점은 올해 말이면 13개가 된다. 지난해 말 추가로 면허를 내준 면세점이 문을 열기 때문이다. 서울 방문 관광객이 늘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추산’이 그 근거다.

면세점업은 당연히 관광업과 함께 커야 하는 산업이다. 그런데도 정부 정책에 이런 고민은 보이지 않았다. ‘한류 후광’에 의존한 중국인 관광객 유치가 전체 외국인 관광객 유치의 절반(2016년 46.8%)에 이르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한국 면세점이 중국인 관광객(遊客·유커)만 바라보는 ‘천수답 면세점’이 된 이유다.

그러면서도 대기업 면세점에 주는 5년 특허권은 바뀌지 않았다.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사업자로서는 5년 안에 본전을 뽑아야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이 여행사에 리베이트를 주고 단체 여행객을 유치하는 것이다. 고를 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를 늘려 면세점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