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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원숙한 사람처럼 옷도 시간이 지날수록 빛날 수 있다


촌스러운 패션의 대명사였던 '패니 팩(Fanny Pack·복대 가방·사진)' 이 2017년 최신 유행 아이템으로 돌아왔다. 지난 1월 루이뷔통이 슈프림과 협업한 컬렉션에서 남자 모델들은 패니 팩을 어깨에 두르고 나타났고, 여성복에서는 에르메스, 구찌, 겐조 등도 패니 팩 열풍에 합류했다. 한때는 퇴물로 취급받던 패니 팩이 세대를 건너 최근 스타일과 맞물려 최신 유행 아이템으로 돌아온 것이다.

패션의 정체성은 끊임없는 창조이므로 항상 새로운 것만 추구하는 것 같지만, 과거 영광으로의 끊임없는 회귀로 해석할 수도 있다. 유행이 계절마다 크게 바뀌는 듯하지만, 사실 큰 틀에서 보면 매해 실루엣과 디테일이 조금씩 바뀌면서 패션은 일정한 간격으로 순환하고 과거의 유행은 다시 트렌드가 되기도 한다.

과거의 스타일을 현재의 트렌드에 맞게 재창조하는 빈티지 룩(vintage look)은 패션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스타일이기도 하다. 물론 한때 반짝 유행했던 과거 스타일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 아니고, 오래되었지만 낡은 듯 멋진 패션으로 재탄생한 것이라고 하겠다.

대공황을 맞은 1930년, 사람들은 오래 입을 수 있는 품질 좋고 내구성 좋은 옷을 선호했다. 빈티지 룩은 당시 중고 옷을 리폼해서 입기 시작하는 사람이 늘면서 패션계를 크게 흔들었다. 1990년대 말에는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오래되고 낡은 느낌의 색이 바래고 구겨진 옷들이 인기를 얻었는데, 이는 '아메리칸 빈티지 룩'으로 자리를 잡으며 '아베크롬비'와 '홀리스터' 등의 브랜드를 통해 아메리칸 스타일을 대표하게 되었다.

원래 빈티지는 빈티지와인(와인의 원료가 되는 포도를 수확하고 와인을 만든 연호가 붙은 정선된 포도주)에서 비롯된 용어다. 빈티지룩을 재현한다는 것은 과거의 것에 새로운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유행을 초월한 룩이다. 젊고 새로워야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원숙한 사람처럼 옷도 시간이 지날수록 빛날 수 있다. 가치 있는 빈티지는 세월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갖는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