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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정치의 말'은 없고 눈앞의 표만 좇는 '정략의 말

기로에 선 대한민국이다. 박근혜 정권의 국정 농단 교훈,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심각한 청년 실업 문제, 심화되고 있는 사회적 갈등을 보라. 정치나 경제는 물론이고 안보와 외교, 사회문제에 이르기까지 나라 전체가 재생과 몰락의 갈림길에 서 있는 느낌이다. 어떻게 이를 극복할 것인가. 대선에 기대를 거는 사람들이 많다. 나라의 새 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정치의 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나라라고 하는 배는 '국민의 힘' 없이는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다. 하지만 뱃머리를 어디로 향하게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의 힘'이다. 그래서 국민은 대선전에 나선 후보들의 연설과 TV 토론에서 국민 통합의 가능성을 찾고자 한다. '선택의 시간(time for choosing)'을 호소한 레이건이나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를 외친 오바마처럼 국민을 하나로 묶은 명(名)연설을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그런데 실상은 어떤가. 진정성 있고 호소력 있는 연설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과욕처럼 보인다. 말싸움으로 일관하는 후보들의 모습이 보기가 민망스러울 정도다. 물론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지적처럼 '정치는 말이다.' 한마디로 어떻게 알아듣기 쉽고 호소력 있게 말을 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지금같이 양극화가 심하고 울분이 고조되어 있을 때는 적개심을 자극하는 말로 상대를 몰아붙이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서 후보들이 막말 싸움에 빠져들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민심은 지극히 냉정하다. 대선 후보들이 이런 민심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외국 신문에서 읽은 한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말을 탄환에 비유한다면 신용은 화약'이라고 했다. 탄환은 화약이 없으면 날아갈 수 없다. 말도 마찬가지다. 신용이 없는 말은 결코 상대에게 전달될 수 없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대선 주자들에게 보내는 경고처럼 들린다. 나라의 큰 그림을 그리는 '정치의 말'은 없고 눈앞의 표만 좇는 '정략의 말'만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화약 없는 탄환만 쏘아대는 듯한 대선전이다. 비방과 흠집 내기의 네거티브 일색으로 치닫고 있다. 자연히 국가 어젠다를 둘러싼 비전과 정책 대결은 실종될 수밖에 없다. 이러다 보니 대선전이 차선(次善)의 선택도 아닌 차악(次惡)의 선택으로까지 변질되고 있다. 물론 '비정상적'인 대선이 만들어낸 부작용일지도 모른다. 여야 간의 보-혁 대결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수한 야-야(野野) 대결이라고 보기도 어려운 불완전한 대선이 아닌가. 게다가 문재인-안철수의 양강 구도라 하지만 이 둘 중 누가 차악인가를 구분할 대립 축은 이미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대신 보수 부동층을 두고 벌이는 안철수와 홍준표의 경쟁이 더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누구를 찍어야 합니까?" 하고 인사말처럼 건네는 유권자들의 모습이 곤혹스러워 보인다. 누가 나라에 해악을 덜 끼칠 '차악'인가를 판단할 객관적 기준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선전이 비전이나 정책 같은 객관적 기준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주관적인 기분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이런 상황에서는 투표하지 않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래서 투표를 포기하고 여행이나 떠나겠다는 사람들의 수가 많아질 우려가 없지 않다. 투표를 하든 안 하든 그것도 선택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라의 앞날을 방향 지우는 데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점을 유권자들은 깊이 새길 필요가 있다. 투표일은 다가오는데 이래저래 유권자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