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사의 땅 사우디아라비아에 '찬바람'이 불고 있다. 어깨에 힘주고 다니던 사우디 왕족들이 바람 맞을 걱정에 대문을 걸어 잠그고 집에서 숨죽이고 있다. 이달 초부터 실세 왕세자 무함마드 빈살만이 '부패 척결'을 내세우며 사촌형 등 유력 왕자는 물론 전·현직 장관을 줄줄이 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위부 장관 무타입 빈압둘라, 언론 재벌 왈리드 빈이브라힘, 최고 재력가 알왈리드 빈탈랄 등이 순식간에 '죄인'으로 전락했다.
사우디 안팎에선 '너무 가혹하다'며 우려를 쏟아냈다. 우리 정부도 이번 사태에 당혹감을 느꼈다. 지난달 말 방한해 한·사우디 수교 5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아델 빈 무하마드 파키흐 기획경제부 장관이 귀국 사나흘 만에 검거됐기 때문이다. 한국이 그의 마지막 출장지가 된 것이다. 사우디 정부는 "장기간 조사한 근거로 체포했다"고 했다. 이 설명대로라면 사우디 당국은 체포할 '예정'인 인사를 한국에서 열리는 수교 기념식에 보낸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낙연 총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파키흐 장관과 악수를 하며 양국의 지난 55년을 기리고 미래를 약속했다. 우리 외교부의 정보력이 아쉬우면서도 사우디가 한국을 얕잡아 본 게 아닌가 의심하는 마음도 생긴다.
빈살만은 의기양양하다. 그는 최근 "부패에 대한 나의 관용은 제로"라면서 "지위를 막론하고 죄가 있으면 일벌백계하겠다"고 했다. 그를 지지하는 매체들은 '빈살만이 부패를 없애 나라를 바로 세우려 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내놓았다. 하지만 빈살만의 말을 액면가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그의 말을 "정적(政敵)에 대한 나의 관용은 제로"라고 재해석한다. '부패 척결'은 그럴싸한 명분에 불과하고 진짜 의도는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이란 게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빈살만은 삼촌과 사촌형을 차례로 끌어내리는 '왕자의 난'을 일으켜 지난 6월 왕세자에 올랐다.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통상적이지 않은 과정을 거쳐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반대 세력이 많이 생겼다. 빈살만이 이번에 무리하게 사정의 칼을 휘두르게 된 것도 '먼저 저들을 치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치적 선제공격'인 것이다.
빈살만 개인의 처지를 생각하면 잘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라는 망가지고 있다. 부패 혐의로 체포된 왕자들은 죗값을 치를 만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정치적 희생자'가 됐다는 분노 때문에 반성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이다. 벌하는 자의 태도와 진정성이 의심받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벌백계의 효력은 사막의 모래처럼 흩어지고 사우디의 정치는 보복을 되풀이하는 악순환의 모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달 한·사우디 수교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만난 한 인사가 두 나라의 이름을 반반 섞어 '코리아 아라비아(Korea Arabia)'라고 덕담한 말이 요즘 머리를 맴돈다. 양국의 친선을 강조한 말이지만 요즘엔 두 나라 정치까지 닮은꼴이 될까 봐 걱정이다
-조선일보-
사우디 안팎에선 '너무 가혹하다'며 우려를 쏟아냈다. 우리 정부도 이번 사태에 당혹감을 느꼈다. 지난달 말 방한해 한·사우디 수교 5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아델 빈 무하마드 파키흐 기획경제부 장관이 귀국 사나흘 만에 검거됐기 때문이다. 한국이 그의 마지막 출장지가 된 것이다. 사우디 정부는 "장기간 조사한 근거로 체포했다"고 했다. 이 설명대로라면 사우디 당국은 체포할 '예정'인 인사를 한국에서 열리는 수교 기념식에 보낸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이낙연 총리와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파키흐 장관과 악수를 하며 양국의 지난 55년을 기리고 미래를 약속했다. 우리 외교부의 정보력이 아쉬우면서도 사우디가 한국을 얕잡아 본 게 아닌가 의심하는 마음도 생긴다.
빈살만은 의기양양하다. 그는 최근 "부패에 대한 나의 관용은 제로"라면서 "지위를 막론하고 죄가 있으면 일벌백계하겠다"고 했다. 그를 지지하는 매체들은 '빈살만이 부패를 없애 나라를 바로 세우려 한다'는 내용의 보도를 내놓았다. 하지만 빈살만의 말을 액면가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들 그의 말을 "정적(政敵)에 대한 나의 관용은 제로"라고 재해석한다. '부패 척결'은 그럴싸한 명분에 불과하고 진짜 의도는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이란 게 빤히 보이기 때문이다.
빈살만은 삼촌과 사촌형을 차례로 끌어내리는 '왕자의 난'을 일으켜 지난 6월 왕세자에 올랐다. 입지전적인 인물이지만 통상적이지 않은 과정을 거쳐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반대 세력이 많이 생겼다. 빈살만이 이번에 무리하게 사정의 칼을 휘두르게 된 것도 '먼저 저들을 치지 않으면 내가 당한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치적 선제공격'인 것이다.
빈살만 개인의 처지를 생각하면 잘한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라는 망가지고 있다. 부패 혐의로 체포된 왕자들은 죗값을 치를 만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정치적 희생자'가 됐다는 분노 때문에 반성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 것이다. 벌하는 자의 태도와 진정성이 의심받는 것이다. 그러면서 일벌백계의 효력은 사막의 모래처럼 흩어지고 사우디의 정치는 보복을 되풀이하는 악순환의 모래 늪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달 한·사우디 수교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만난 한 인사가 두 나라의 이름을 반반 섞어 '코리아 아라비아(Korea Arabia)'라고 덕담한 말이 요즘 머리를 맴돈다. 양국의 친선을 강조한 말이지만 요즘엔 두 나라 정치까지 닮은꼴이 될까 봐 걱정이다
-조선일보-
'사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국의 미사일보다 자유 세계의 정보가 훨씬 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0) | 2017.11.28 |
---|---|
오직 정당한가[義]를 생각할 뿐이다 (0) | 2017.11.27 |
법률 용어로 'bar'는 변호사(lawyer 또는 attorney at law) 전체를 가리킨다 (0) | 2017.11.24 |
언행 불일치의 대표적 인물이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0) | 2017.11.24 |
정의당은 인간 지옥과 같은 북한의 인권 실상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 북한인권법도 반대했다 (0) | 2017.1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