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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쿠르츠- 2015년 난민이 유럽으로 들어오는 발칸 루트 폐쇄를 결정할 만큼 과감한 결단력

지난 15일(현지 시각) 오스트리아 총선에서 중도 우파 국민당이 승리했다. 1970년 이후 두 번째 총선 승리다. 국민당은 중도 좌파인 사회민주당과 함께 양대 정당이지만 최근 40여년 동안 인기가 예전만 못해 주로 연정 파트너로 사민당을 돕는 역할에 머물렀다. 2007년 이후부터 올해까지도 국민당은 사민당의 연정 파트너였다.

국민당의 본격적인 위기는 2015년 찾아왔다. 정부의 10만여 난민 포용 정책에 반감을 느낀 보수층이 연정에 참여한 국민당 대신 극우 정당인 자유당 쪽으로 이탈하기 시작한 것이다. 국민당 지지율은 20%대로 주저앉았고 지난해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엔 후보가 올라가지도 못했다.

겉으론 자유당의 도약이 국민당 몰락의 원인으로 보이지만 진짜 원인은 내부에 있었다. '선거에서 1등은 못해도 2등은 할 수 있다'는 나태한 의식이 팽배했고 지역별 계파에 따라 당이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보수층을 사로잡을 정책도 내놓지 못했다. 외신들은 총선 전 국민당의 모습을 '복잡한(complex)' 상태라고 평가했다.

국민당은 새 인물을 찾아야 했다. 지도부·당원·당직자의 눈은 제바스티안 쿠르츠(31) 외무장관에게 쏠렸다. 2013년 유럽 최연소 외무장관에 발탁된 그는 국민 사이에서 이미 '미래의 총리감'으로 오르내렸다. 출장 때 이코노미석을 이용하고,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조언을 구하며, 노타이 차림에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쿠르츠는 낡은 권위 의식에 빠진 기존 정치인들과는 전혀 달랐다. 2015년 난민이 유럽으로 들어오는 발칸 루트 폐쇄를 결정할 만큼 과감한 결단력도 갖고 있었다. 잘 생긴 외모와 18세부터 한 여자 친구만 사귄 깨끗한 사생활 덕분에 '중산층 여성들이 가장 선호하는 사윗감'이 됐다.

산악자전거와 암벽 등반을 취미로 즐기는 쿠르츠는 고루한 보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제격이었다. 그는 선거운동 중 20%에 달하는 시간을 유권자들과 사진을 찍는 데 할애했다. 유권자들은 몇 시간씩 줄을 서서 사진을 찍었다. 오스트리아 정치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현지 언론은 "쿠르츠는 유명 팝스타 저스틴 비버와 같은 존재"라고 전했다. 그가 당대표 대행을 맡은 지난 5월 국민당은 지지율 1위로 올라섰다.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국민당은 그에게 장관 인사권, 총선 공천권, 정당 정책 수립 및 선거 전략 수립 권한을 모두 넘기는 전례 없는 일을 단행했다. 노쇠한 국민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은 총선을 앞두고 '쿠르츠당'으로 탈바꿈한 젊은 국민당에 정권을 맡겼다.

앞서 프랑스·캐나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지난 3월 프랑스에선 중도 신당을 창당한 에마뉘엘 마크롱(40)이 양대 정당을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캐나다에서도 2015년 정치 신인 쥐스탱 트뤼도(45)가 10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루고 총리가 됐다. 한국 정치에도 매력적이고 신선한 리더십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