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제를 무기로 안보 선택을 강요하는 행위에 무너질 수도 없는 일

오리지널마인드 2017. 9. 18. 07:23
2014년 끝난 러시아와 중국 간 시베리아 천연가스 공급 계약은 여러 기록을 남겼다. 연간 300억㎥에 이르는 가스를 30년간 공급하는 금액이 4000억달러로 단일 에너지 계약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거래 규모보다 더 극적이었던 것은 협상 기간이었다. 두 나라는 가격 흥정에 꼬박 10년을 보냈다.

이 거래 방안이 처음 거론된 건 1994년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4년 양국은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본격 협상에 돌입했다. 두 나라 모두 이 거래가 중요했다. 러시아는 천연가스 수출 대국이지만, 수출 지역이 유럽으로 한정돼 있었다. 유럽 수출이 막히거나 줄었을 때를 대비해 아시아 공급 라인이 필요했다. 환경 문제가 골치 아픈 중국도 석탄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시베리아산 천연가스가 절실했다.

그런데도 양국은 가격 문제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러시아는 유럽 공급 가격을 기준으로 삼자고 했다. 같은 에너지 값의 국제 석유 가격과 연동해 결정되는 가격으로 1000㎥당 400달러 전후였다. 반면, 중국은 중앙아시아에서 공급받는 가격인 200달러 수준을 주장했다. 국제 석탄 시세를 기준으로 한 가격이다. 러시아는 "중국에 반값으로 주면 유럽이 어떻게 나오겠느냐"며 버텼다. 중국도 비싼 가격을 주느니 차라리 중앙아시아산 구매를 늘리겠다고 나왔다. 두 나라 정상이 10차례 가까이 만났지만, 가격 이견은 해소되지 않았다.

10년 만에 나온 최종 계약은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국제 전문가들은 러시아의 판정승으로 본다. 공급가를 추산해보면 1000㎥당 370~380달러 선이고, 가격 산정 방식도 석유 가격 기준을 채택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승인 중 하나는 중국 특유의 '시간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는 점이다. 중국을 경험해본 서방 기업가들은 중국인들을 '시간의 마술사'라고 부른다. 한없이 시간을 끌고 미루면서 상대가 조급하도록 만들어 계약을 유리하게 이끈다는 것이다.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이런 협상술을 '츠쿠나이라오(吃苦耐勞·고생을 참고 견딘다)'라는 말로 요약하면서 서방 기업가들에게 같은 전술로 중국과 협상하라고 권한다.

히말라야 고원 둥랑(洞郞)에서 벌어진 중국과 인도의 군사 대치가 지난 8월 두 달여 만에 인도 측의 승리로 끝난 것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이 자국 국경 내에 건설하는 도로가 이 사건의 쟁점이었다. 인도는 이 일대 영토의 폭이 좁은 곳은 17㎞에 불과하다. 유사시 이 도로를 통해 들어온 중국 증원군이 길목을 차단하면 인도 동북부의 7개 주가 본토와 분리된다. 인도는 수백명의 병력과 불도저를 보내 공사를 가로막았다. 중국이 군사훈련으로 위협하고 증원군을 배치해도 꿈적 않고 버텼다. 중국은 결국 9월 초 자국 내 샤먼(廈門)에서 열린 브릭스정상회의를 앞두고 공사 중단을 결정했다. 모디 총리는 이 결정을 본 뒤 정상회의에 참석했다.

사드 보복이 6개월을 넘어가면서 도대체 이 보복이 언제쯤 끝날 것 같으냐고 묻는 이가 많다. 중국 학자나 전문가들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최고 권력자인 시진핑 주석이 직접 사드가 중국의 핵심 이익을 침해한다고 했는데, 명분 없이 방향이 바뀌겠느냐는 것이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시간은 우리 편'이라는 뉘앙스마저 느껴진다.

2010년 센카쿠 문제로 희토류 수출 금지 등 경제 보복을 당했던 일본은 냉정하게 대응했다. 외교 라인과 막후교섭을 통해 항의하고 읍소하는 전략이 먹히지 않자 원칙대로 나갔다. 세계무역기구(WTO)에 중국을 제소해 2년 뒤 승소했고, 희토류 수입선을 인도 등 다른 나라로 돌렸다. 기업들도 중국 내 생산 기반을 동남아로 전환하고, 인도 시장을 개척하는 것으로 대안을 찾고 있다. 사드 보복은 고통스럽지만, 조급해한다고 해결될 수는 없다. 경제를 무기로 안보 선택을 강요하는 행위에 무너질 수도 없는 일이다.
ー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