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맹자의 사덕(四德)과 사단(四端). 인의예지 자살예방법

오리지널마인드 2017. 2. 22. 08:26
첫째, 위정자는 '인(仁)'이 있어야 한다. 인이란 측은지심(惻隱之心)으로 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자살예방의 첫걸음은 바로 인식의 전환이다. 즉, 국가적 차원의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에서든 국민이 가장 소중한 가치를 지닌 생명을 스스로 던져 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오죽하면 자살까지 생각했을까’, ‘안정된 삶이 깨지고 자살로 내몰리는 순간 얼마나 불안했을까’라고 안타까워하면 자살은 우리 모두의 일이 된다. 그러나 ‘자살자는 원래 문제가 있었던 사람이다’, ‘자기가 못나서 죽은 것이다’라고 생각하면 자살은 남의 일이 되어 버린다.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자살률이 높았던 것이 아니다. 1991년 자살률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는 8.4명, 일본은 16.9명, 핀란드는 29.7명이다. 그 사이 우리나라 국민성이 갑자기 바뀌지 않았다면 26년 동안 자살률이 3배나 증가한 사실에 대해 국가가 사회적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연도별 자살률 그래프를 보면 1998년, 2003년, 2009년에 자살률이 급증하는 패턴을 보이는데 그 전년도에 각각 IMF 사태, 신용카드 대란, 미국발(發) 금융위기가 있었다. 당연히 이러한 경제 위기는 우리나라만 경험한 게 아니다. 문제는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적 형평성이 깨지는 순간에 국가차원의 자살예방대책이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국가는 더이상 자살을 개인의 문제로 보지 말고, 사회 전반적인 문제로 인식을 전환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진정 인을 중요하게 여기는 위정자라면 여러 국정 운영 중 자살예방사업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둘째, 국민은 의로워야 한다. 의(義)란 수오지심(羞惡之心)으로 자기의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고, 남의 옳지 못함을 미워하는 마음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자살예방사업에 동참할 의로운 사람이 필요하다. 중앙심리부검센터 보고서를 보면 자살사망자의 93%는 어떤 형태로든 사망 전 가족이나 친구가 눈치 챌 수 있는 도움 요청 메시지를 보내는 경향이 있다. 당신은 혹시 주변에서 평소와 달리 안색이 어둡고 우울해 보이는 친구나 친척을 호소를 애써 외면한 적은 없었는가? 혹시 외면 후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의로운 사람이 될 자격이 충분하다. 중앙자살예방센터는 한국자살예방협회가 개발한 한국형 표준자살예방교육 프로그램 '보고듣고말하기'를 26만여명에게 교육했다. 누구나 신청만 하면 자살위험을 예고하는 ‘신호’를 인식해 자살위험에 처한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적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연결하는 생명사랑지킴이가 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다. 만약 당신이 인터넷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동반자살 모집광고를 비롯해 자살을 권장하는 각종 유해정보를 보고 울분을 느낀 의로운 사람이라면 간단한 절차를 통해 자살유해정보신고 모니터링 단원이 될 수 있다. 굳이 교육을 받거나 자원봉사자가 되지 않더라도 주변에서 힘들어 하는 사람을 보면 외면하지 않고 ‘괜찮니’라고 말하면서 먼저 다가설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의로운 사람'이다.

셋째, 시대를 비추는 언론은 예(禮)를 지켜야 한다. 예란 사양지심(辭讓之心)으로 자기 것을 먼저 챙기려 하지 않고,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이다.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어겨가면서 선정성을 내세워 돈을 벌고자 하는 언론의 행태가 바뀌어야 한다. 2008년 10월 어떤 유명 연예인이 자살로 사망한 직후 신문과 방송에서 무분별한 자살보도가 홍수처럼 쏟아졌다. 대부분 자살관련 언론보도 지침을 무시한 내용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방송에는 자살 방법이 소개되면 안 된다’, ‘자살이 문제해결 방법인 것처럼 설명되면 안 된다’ 등 기본 수칙이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이 사건 직후 모방 자살자가 1000여명이나 늘어났다. 자살 관련 언론보도지침만 엄격하게 지켰다면 애꿎게 1000명이나 더 자살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포괄적 의미로 해석하자면 언론의 미필적 고의로 자살사망자가 더 늘어난 셈이다. 오죽하면 한 때 오스트리아는 자살이라는 단어 자체를 방송계의 금칙어로 지정했을까 싶다. 문제는 국민들의 원시적 본능을 자극해 흥미 위주의 보도를 함으로써 선정주의적 경향을 띠는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과 일부 기본 소양이 부족한 기자들이다. 아직도 자살을 선정적 미끼 기사로 활용하려는 언론사와 무지한 기자가 남아 있다면 혹시 자신의 행동이 남의 불행으로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해야 할 것이다. 요즘 TV 드라마는 자살을 소재로 시청률을 끌어올리려는 전개방식이 만연해있다. 왜 하필 드라마 속 주인공의 가족이나 친구들은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가. 이제는 TV에서 흡연 장면이나 흉기가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자살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를 만들지 않겠다고 드라마 관련 협회에서 스스로 자정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자살을 소재로 상투적으로 극을 이끌어 나가는 것은 작가의 상상력 빈곤을 만천하에 드러낼 뿐이다. 언론은 자살이라는 단어는 물론, 자살 장면이 여과없이 많이 노출될수록 자살민감도가 낮아짐을 명심하고, 지켜야 할 것은 꼭 지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넷째, 전문가는 지혜로워야 한다. 지(智)란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옳고 그름을 가릴 줄 아는 마음이다. 진단이 정확해야 처방이 올바르게 나올 수 있다. 전문가가 올바른 진단을 내려야 사업이 올바르게 진행될 수 있다. 자살예방 관련 상담, 치료, 연구, 교육, 사업을 한 경험이 전혀 없으면서 자살마케팅을 하는 등 전문가 행세를 하는 사람을 경계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자살률 1위라는 말은 모든 사업의 당위성으로 포장,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되기 시작했다. 일부 효과가 불명확한 사업들이 자살예방사업이라는 미명하에 실행된 적도 있다. 대승적인 차원에서 자살예방사업에 관심이 늘어나는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부족한 예산 및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근거가 있고 꼭 필요한 사업인지에 대해 검증할 필요가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가 ‘입시지옥 때문에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1위’라고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행복지수가 낮아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 1위’라고 믿는 이들도 더러 있다. 잘못된 정보와 지식들이 여과없이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OECD 국가별 최근 연도 10대 자살률 통계를 보면 우리나라 10대 자살률은 4.6명으로 △칠레(4.9명) △호주(5.2명) △폴란드(5.2명) △미국(5.4명) △캐나다(5.5명) △핀란드(5.6명) △뉴질랜드(14명) 보다 낮다. 또한 2014년 기준 우리나라의 10~24세 자살률 역시 7.9명으로, OECD 국가 중 11위에 불과하다. 18세, 20세, 24세 이하로 분석해도 우리나라는 절대 청소년 자살률 세계 1위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청소년보다는 중·장년 자살이, 중·장년 자살보다 노년기 자살이 훨씬 심각하다. 청소년자살예방사업뿐만 아니라 중·장년 더 나아가 노년 자살을 막기 위한 다양한 전략과 전문가가 필요하다. 우리나라 자살예방전략 및 대책은 분야별로 전문화되어 있는데 전문가의 수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모든 사업이 마찬가지지만 자살예방사업 분야도 연구·교육·기획·홍보·실행 분야의 전문가 양성이 절실히 필요하다.

어쩌면 너무나 기본이라 소홀하기 쉬운 맹자의 사덕(四德)과 사단(四端). 인의예지 자살예방법 실천으로 우리나라가 하루 빨리 자살대국의 오명을 떨쳐버릴 수 있기를 간절하게 희망해본다.
중앙자살예방센터 홍창형 센터장(아주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