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모를 총탄에 여읜 여식이 자신마저 쇠고랑 찬 모습
오리지널마인드
2017. 5. 24. 07:08
어제 종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사진 두 장이 겹쳐서다.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은 추모객이 구름 같았다. 8주기였지만 '노(盧)의 남자' 문재인이 대통령 되고 맞은 첫 기일(忌日)이다. 세상을 얻고 나서 노 전 대통령을 찾았으니 회한이 사무쳤겠다. 표정은 밝았다. 다른 사진은 이날 서울중앙지법 417호 대법정에 선 '무직(無職) 박근혜' 얼굴이다. 부모를 총탄에 여읜 여식이 자신마저 쇠고랑 찬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세월은 죄가 없다. 그러나 불과 10년도 안 된 사이 흑백사진의 음영(陰影)이 뒤바뀐 느낌이다. 수첩을 꺼내 보니 8년 전 5월 23일은 토요일이었다. 급히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 회사로 가던 중 차 안 라디오에서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부산대병원 응급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가족 앞으로 유서를 남기고…" "노 전 대통령은 8시 13분께 병원에 도착했으나 상태가 위중해 9시 30분께 서거하셨…."
▶열성 지지자들이 비통해할 때 문 전 실장 음성은 차분하다 못해 바삭하게 말라 있었다. 문 전 실장은 새벽에 벌어진 황망한 일들을 감정이나 군더더기 없이 팩트만 전달했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아내는 동작도 없었다. 청와대 출입 동료에게 "문 실장이 원래 저런 사람이었어?" 하고 물은 기억도 난다. 국민은 그때 '문재인'을 다시 보았고 그것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속으로 눌러 다스리며 8년을 기다렸을 것이다.
▶당시 상황은 복잡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60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세 번째 검찰 소환 조사를 받고 있었다. 길 가다 돌부리에 차여도 "노무현 때문"이라고 화를 낸다던 민심의 뒤끝이었다. 그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봉하마을로 문상을 갔다.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질서 유지가 어렵다"고 했다. 박근혜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뒤 박근혜는 대선 당선 때까지 승승장구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날개를 달았다.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패했다.
▶노무현은 유서에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썼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고 했다. 여생을 짐으로 여겨야 했던 지점에 전직 대통령들의 비극이 놓인다. 어제 봉하마을과 서울중앙지법에서 찍힌 사진 두엇이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생무상, 정치 무상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마르크스가 말했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은 두 번 찾아온다. 처음에는 비극적으로, 두 번째는 희극적으로." 어제는 그 희극이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조선일보-
▶세월은 죄가 없다. 그러나 불과 10년도 안 된 사이 흑백사진의 음영(陰影)이 뒤바뀐 느낌이다. 수첩을 꺼내 보니 8년 전 5월 23일은 토요일이었다. 급히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 회사로 가던 중 차 안 라디오에서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부산대병원 응급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노 전 대통령이 가족 앞으로 유서를 남기고…" "노 전 대통령은 8시 13분께 병원에 도착했으나 상태가 위중해 9시 30분께 서거하셨…."
▶열성 지지자들이 비통해할 때 문 전 실장 음성은 차분하다 못해 바삭하게 말라 있었다. 문 전 실장은 새벽에 벌어진 황망한 일들을 감정이나 군더더기 없이 팩트만 전달했다. 손수건으로 눈가를 닦아내는 동작도 없었다. 청와대 출입 동료에게 "문 실장이 원래 저런 사람이었어?" 하고 물은 기억도 난다. 국민은 그때 '문재인'을 다시 보았고 그것이 오늘의 그를 있게 했다. 속으로 눌러 다스리며 8년을 기다렸을 것이다.
▶당시 상황은 복잡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게 600만달러를 받은 혐의로 세 번째 검찰 소환 조사를 받고 있었다. 길 가다 돌부리에 차여도 "노무현 때문"이라고 화를 낸다던 민심의 뒤끝이었다. 그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봉하마을로 문상을 갔다.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질서 유지가 어렵다"고 했다. 박근혜는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뒤 박근혜는 대선 당선 때까지 승승장구하며 '선거의 여왕'으로 날개를 달았다. 문재인은 박근혜에게 패했다.
▶노무현은 유서에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고 썼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고 했다. 여생을 짐으로 여겨야 했던 지점에 전직 대통령들의 비극이 놓인다. 어제 봉하마을과 서울중앙지법에서 찍힌 사진 두엇이 그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인생무상, 정치 무상을 이보다 더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마르크스가 말했다. "역사적 사건과 인물은 두 번 찾아온다. 처음에는 비극적으로, 두 번째는 희극적으로." 어제는 그 희극이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