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집단지성이나 다수결의 힘으로 상수(上手) 한 사람 이길 수 없는 것이 바둑의 이치다. 한 사람이 1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
오리지널마인드
2018. 1. 11. 09:31
“전문가 족속은 끔찍해(The experts are terrible).”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작년 유세 기간 중 입버릇처럼 한 말인데, 대중심리 동원의 귀재다운 발언이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블루칼러 백인 유권자 계층에, 권위적·이기적인 파워엘리트에 대한 염증이 잔뜩 쌓인 걸 간파했다. 자신도 말 많은 사계의 전문가가 싫었다. 트럼프는 집권 후에도 이런 국민 정서에 기대 외교·통상 전문가들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를 밀어붙였다.
우리의 전문가 무시 풍조도 만만찮다. 새해 벽두를 달군 최저임금 파동만 해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재계·학계 전문가 집단의 반대에도 3년 내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벼락인상을 강행하더니 올 들어 불어닥친 그 후폭풍을 다시금 비전문가적 수단을 총동원해 막으려 한다. 일자리 대란을 몰고 온 주범은 임금인데 화살은 엉뚱한 데를 향했다. 사업주(최저임금 준수 단속)·건물주(임대료 인하)·대기업(하도급 계약 양보)·카드회사(수수료 인하) 같은 주변 생태계를 옥죄는 일이다. 물론 하나하나가 난제다. 역대 정권이 야심 차게 덤벼들었다가 손들고 나온 걸 전문관료들이 모를 리 없다. 두더지 잡기 망치 놀음처럼 경제 주체들 돌아가며 두드려 대는 건 청와대 참모들의 과도한 욕심으로 보인다.
탈원전 정책도 그렇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중단이 공론화위원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는데도 탈원전 정책은 여전히 속도를 내고 있다. 원전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고양이에 생선 맡기는 꼴”이라는 이유로 찬밥신세다. 이뿐인가. 한국전력 대신 영세한 협동조합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을 몰아준다든지, 시민단체 근속 기간을 공무원 경력으로 쳐 주려는 발상, ‘아마추어 외교부’란 오명을 쓰고도 전문외교관 대신 영어 서툰 정권코드 인사를 줄줄이 해외공관장에 내보내는 고집도 전문가 경시의 만화경이다.
사실 삐뚤어진 전문가들 때문에 성난 사람이 적잖다. 법률기술자·토목기술자·의료기술자 같은 비아냥, 관피아·모피아·금피아·언피아 같은 마피아 시리즈가 유행하는 건 군림하고 잇속 밝히는 파워엘리트에 대한 조소다.
이쯤에서 "전문가는 틀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적게 틀리는 사람”이라는 톰 니콜스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전쟁이 너무 중요해 군인에게만 맡길 수 없듯이(클레망소 프랑스 수상의 말) 에너지전환이나 경제성장 역시 전문가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논리는 그럴싸하다. 하지만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넘쳐나는 정보에 어설픈 지식으로 떠들어대는 이들이 진정한 전문가 자리를 대체한다면 남는 건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위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좌회전하다가 여의치 않을 때 우회전을 시도한 유연한 ‘운전자’였다. 정권 초기 재벌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정책 아이디어를 얻는가 하면, 지금 집권당이 "망국의 불평등 조약”이라고 질타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였다. 미 제국주의를 거든다는 지지세력의 성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까지 했다. 이에 비해 ‘촛불 정부’는 외길이다. 평등주의 분배정책에 대한 시장 역풍이 거세도 요지부동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현 정권 경제철학인 ‘소득 주도 성장’의 근간이라 그런지 "어떤 일이 있어도 밀고 나가겠다”고 문 대통령은 재차 다짐했다.
중국의 최정상 프로기사 5명이 착수를 의논해 가며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 겨루는 이벤트가 지난해 있었다. 결과는 인간의 완패였다. 집단지성이나 다수결의 힘으로 상수(上手) 한 사람 이길 수 없는 것이 바둑의 이치다. 한 사람이 1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라는데 그 한 사람은 분명 천재급 전문가일 것이다. 흔히 알파고 하면 AI의 놀라운 잠재력을 떠올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교훈이 있다. 트럼프나 문재인 정부에 다 필요한 덕목, 압도적 전문성에 대한 존중과 겸허다.
홍승일 중앙디자인웍스 대표 중앙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재작년 유세 기간 중 입버릇처럼 한 말인데, 대중심리 동원의 귀재다운 발언이었다. 러스트 벨트(Rust belt)의 블루칼러 백인 유권자 계층에, 권위적·이기적인 파워엘리트에 대한 염증이 잔뜩 쌓인 걸 간파했다. 자신도 말 많은 사계의 전문가가 싫었다. 트럼프는 집권 후에도 이런 국민 정서에 기대 외교·통상 전문가들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 우선주의와 고립주의를 밀어붙였다.
우리의 전문가 무시 풍조도 만만찮다. 새해 벽두를 달군 최저임금 파동만 해도 그렇다. 문재인 정부는 재계·학계 전문가 집단의 반대에도 3년 내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 벼락인상을 강행하더니 올 들어 불어닥친 그 후폭풍을 다시금 비전문가적 수단을 총동원해 막으려 한다. 일자리 대란을 몰고 온 주범은 임금인데 화살은 엉뚱한 데를 향했다. 사업주(최저임금 준수 단속)·건물주(임대료 인하)·대기업(하도급 계약 양보)·카드회사(수수료 인하) 같은 주변 생태계를 옥죄는 일이다. 물론 하나하나가 난제다. 역대 정권이 야심 차게 덤벼들었다가 손들고 나온 걸 전문관료들이 모를 리 없다. 두더지 잡기 망치 놀음처럼 경제 주체들 돌아가며 두드려 대는 건 청와대 참모들의 과도한 욕심으로 보인다.
탈원전 정책도 그렇다. 신고리 5, 6호기 건설중단이 공론화위원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부결됐는데도 탈원전 정책은 여전히 속도를 내고 있다. 원전 전문가들은 이 과정에서 "고양이에 생선 맡기는 꼴”이라는 이유로 찬밥신세다. 이뿐인가. 한국전력 대신 영세한 협동조합에 대규모 태양광 발전사업을 몰아준다든지, 시민단체 근속 기간을 공무원 경력으로 쳐 주려는 발상, ‘아마추어 외교부’란 오명을 쓰고도 전문외교관 대신 영어 서툰 정권코드 인사를 줄줄이 해외공관장에 내보내는 고집도 전문가 경시의 만화경이다.
사실 삐뚤어진 전문가들 때문에 성난 사람이 적잖다. 법률기술자·토목기술자·의료기술자 같은 비아냥, 관피아·모피아·금피아·언피아 같은 마피아 시리즈가 유행하는 건 군림하고 잇속 밝히는 파워엘리트에 대한 조소다.
이쯤에서 "전문가는 틀리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적게 틀리는 사람”이라는 톰 니콜스의 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전쟁이 너무 중요해 군인에게만 맡길 수 없듯이(클레망소 프랑스 수상의 말) 에너지전환이나 경제성장 역시 전문가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는 논리는 그럴싸하다. 하지만 인터넷과 SNS의 발달로 넘쳐나는 정보에 어설픈 지식으로 떠들어대는 이들이 진정한 전문가 자리를 대체한다면 남는 건 포퓰리즘과 민주주의의 위기다.
노무현 대통령은 좌회전하다가 여의치 않을 때 우회전을 시도한 유연한 ‘운전자’였다. 정권 초기 재벌 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정책 아이디어를 얻는가 하면, 지금 집권당이 "망국의 불평등 조약”이라고 질타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밀어붙였다. 미 제국주의를 거든다는 지지세력의 성토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파병까지 했다. 이에 비해 ‘촛불 정부’는 외길이다. 평등주의 분배정책에 대한 시장 역풍이 거세도 요지부동이다. ‘최저임금 1만원’은 현 정권 경제철학인 ‘소득 주도 성장’의 근간이라 그런지 "어떤 일이 있어도 밀고 나가겠다”고 문 대통령은 재차 다짐했다.
중국의 최정상 프로기사 5명이 착수를 의논해 가며 바둑 인공지능(AI) 알파고와 겨루는 이벤트가 지난해 있었다. 결과는 인간의 완패였다. 집단지성이나 다수결의 힘으로 상수(上手) 한 사람 이길 수 없는 것이 바둑의 이치다. 한 사람이 1만 명을 먹여 살리는 시대라는데 그 한 사람은 분명 천재급 전문가일 것이다. 흔히 알파고 하면 AI의 놀라운 잠재력을 떠올리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교훈이 있다. 트럼프나 문재인 정부에 다 필요한 덕목, 압도적 전문성에 대한 존중과 겸허다.
홍승일 중앙디자인웍스 대표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