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트럼프는 "시 주석으로부터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 대한 수업을 받았다"며

오리지널마인드 2017. 4. 26. 08:34
트럼프는 "시 주석으로부터 한국과 중국의 역사에 대한 수업을 받았다"며 "한국은 (역사적으로)사실상 중국의 일부였다"고 했다. 미국과 중국 정부는 이 발언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한국이 수천년간 독립국이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미국 백악관), "한국이 걱정할 게 없다"(중국 외교부)는 정도의 해명만 내놨다. 정상 간의 세세한 대화 내용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은 외교 관례이다. 그러나 한국의 역사를 왜곡한 이 발언을 외교 관행에 기대어 적당히 넘어갈 일은 아니다. 한국 정부 역시 미·중을 상대로 항의 섞인 문의를 했지만 속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1949년 중국 공산당 집권 후 미·중 정상이 처음 만난 것은 1972년이었다. 6·25전쟁에서 서로 총을 겨눴던 미·중은 적국(敵國)이었다. 1954년 국제회의에서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 중국 총리를 만난 존 덜레스 미국 국무장관이 그와 악수하는 것을 거부했을 정도였다. 그랬던 미·중이 1971년 미국 탁구팀의 중국 방문과 키신저 당시 미국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극비 방중(訪中)을 통해 관계 정상화에 나섰고 이듬해인 1972년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다. 이때 닉슨은 저우언라이에게 "코리안은 북이든 남이든 감정적으로 충동적인 사람들"이라며 "우리(미·중)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사태가 없도록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20년 넘게 적국이었던 미·중 수뇌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나눈 것이다. 주변 국가를 부속물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강국의 공통된 특징이다. 트럼프가 소개한 시진핑의 발언으로 미뤄볼 때 이번 '마라라고 미·중 회담'에서도 비슷한 취지의 대화가 오갔을 것으로 보인다.

마라라고 회담 이후 미·중은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트럼프 정부가 내건 '최대한의 대북 압박과 관여(maximum pressure and engagement)' 구상에 따라 미·중이 역할 분담을 한 듯 북을 압박하면서 '북의 비핵화 약속 후 대화'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강국들이 크게 움직일 때면 사소한 오해나 오판이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행되는 우리의 대선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대선 후보 토론에선 '돼지 발정제' 같은 논란이 이어지고 안보 분야는 미국 편이냐, 북한 편이냐를 따지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스스로 강국들이 우리를 우습게 여기도록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