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하류 노인 신세를 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의지할 가족 하나 없는 독거 노인이 돼도 마찬가지

오리지널마인드 2017. 9. 19. 07:10
저명 인사들로 구성된 '백세회'란 모임이 있다. 84세 전직 장관이 끝에서 두 번째로 젊다. 총무 일이며 갖은 심부름이 그의 몫이다. 나이가 팔십을 넘어도 어느 그룹에 속하느냐에 따라 어르신 대접을 받기도, 젊은 사람 취급을 당하기도 한다. 대도시에선 중장년인 49세가 전남 곡성 같은 곳에 가면 엄연한 '청년'이다. 곡성은 아예 조례에서 청년 범위를 '19세 이상 49세 이하'로 정했다. 20~30대를 찾기 힘들어서다. 

▶일본에서도 알아준다는 장수(長壽) 지역 오키나와는 더 하다. 거기엔 이런 글귀의 장수비가 있다고 한다. '70세에 어린이, 80세에 젊은이인 당신. 90세 됐을 때 천국에서 부르면 이렇게 말하라. 100세 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백세 쇼크'가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도래한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에 90세 넘는 고령 인구가 20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대전(150만명) 인구보다 많다. 



▶일본은 65세 이상도 3500만명을 넘었다. 일하는 노인 숫자는 13년 연속 늘어나 770만명에 달한다. 일본에선 65~69세 남성의 절반 넘게 일을 한다. 기업 정년은 대개 60세지만 정년 후에도 임금을 덜 받고 65세까지 일할 기회 주는 곳이 많아졌다. 히로시마전철 같은 회사는 재고용 연령을 70세까지로 높였다. 아베 정권은 노인들 복지 부담을 감당 못 해 '나이를 묻지 않는 복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노인이라도 여력이 되면 건강보험 개인 부담금을 더 내게 한다는 것이다. 

▶수명 길어진다고 좋기만 한 건 아니다. 생계 걱정, 병치레 기간만 길어질 수 있다. 얼마 전 방한한 일본의 사회활동가 후지타 다카노리는 저서 '하류 노인'에서 연봉 400만엔(약 4000만원) 벌던 직장인도 노후 하류 노인으로 굴러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큰 병에 걸려 치료비로 모아둔 돈을 날리거나 자녀가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은둔형 외톨이로 부모에 얹혀사는 경우 하류 노인 신세를 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의지할 가족 하나 없는 독거 노인이 돼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90세 이상은 16만1000명쯤 된다.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은 14%로 아직 일본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고령화 속도가 일본은 저리 가라다. 일본이 고령자 비율 7%에서 14% 되는 데 24년 걸렸다. 우리는 17년 만에 돌파했다. 이런 속도는 감안하지 않고 기초연금이며 건강보험 같은 노인 복지를 무조건 늘리겠다고만 하는 것이 지금 정부다. 경제 좋아질 전망은 별로다. 5년 뒤, 10년 뒤 일본이 지금 겪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사태에 봉착할 가능성이 크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