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켈은 이렇게 말한다. “솔직히 말해서 페미니즘의 역사는 내가 공감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나는 그저 모든 여성이 선택과 기회의 자유를 누리길 원한다. 이런 게 페미니스트라면 나는 페미니스트겠지만 나는 내가 갖고 있지 않은 타이틀로 날 꾸미고 싶지 않다.” 그는 2013년에 같은 질문을 받았을 때도 “나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표현한다면 진짜 페미니스트들이 불쾌하게 느낄 것”이라고 답했다.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번쩍 손을 든 ‘퍼스트도터’ 이방카가 지난 2일 <일하는 여성: 성공의 법칙 다시 쓰기>라는 책을 냈다. 세 아이를 둔 엄마이자 잘나가는 사업가로서 ‘워킹맘’들에게 전하는 성공의 조언을 담은 책이다. 누군가는 부러워 책을 사볼지 모르겠지만 책에 대한 평가는 혹평 일색이다.
뉴욕타임스 북리뷰는 “온갖 영감을 주는 명언으로 범벅이 된 딸기 밀크셰이크”라고 표현했다. 실제 이방카의 책은 소크라테스, 마하트마 간디, 넬슨 만델라, 제인 구달 등 명사의 말로 가득하다. 구달은 “내 말을 진심으로 이해했길 바란다”고 뼈 있는 충고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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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같은 말씀이 겉도는 이유는 그와 어우러진 이방카의 공허한 경험 때문이다. 그는 “대선 기간에 너무 바빠 마사지도 받지 못했고 매일 아침 20분씩 하던 명상을 할 시간도 없었다”고 토로한다. 또 육아휴직을 하는 엄마들에게 “믿을 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서 당신이 떠난 자리를 지키게 하라”고 조언한다. 부동산 재벌의 딸로 태어나 7억4000만달러(약 8300억원)를 가진 자산가이자 아랫사람에게 언제든 일을 맡기고 언제든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는 트럼프그룹 부회장이니 가능한 얘기다. 성평등 운동가인 파티마 고스 그레이브는 “아무리 드라이브를 하고 화창한 해변에 놀러 나가도 집세와 밥값을 벌기 위해 분투하는 두 자녀 엄마의 삶의 무게가 덜어지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경험은 공감의 자양분이다. 그러나 겪어봤다고 공감할 줄 아는 건 아니다. 진짜 공감은 내 경험에 대한 성찰, 다른 이의 경험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이게 빠진 경험은 상처를 주는 독이 되기도 한다. 이방카의 ‘워킹맘’ 운운이 울림이 없는 이유, 차라리 어설프게 아는 척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메르켈의 말이 더 와닿는 이유다.
우리에게도 ‘내가 해봐서 다 안다’고 입버릇처럼 ‘노오력’을 말하던 대통령이 있었다. 찢어지는 가난에 고학으로 성공한 그는 시장에서 어묵을 먹고 청년들에게 실업타개책으로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했다. 심지어 그런 경험도 없는 또 다른 대통령은 ‘아버지가 해봐서 안다’며 ‘한강의 기적’을 말하고 청년들에게 “중동에 가라”고 했다. 올해 대선에 나왔던 어떤 후보는 경비직 아버지와 까막눈 어머니를 앞세워 서민대통령을 자처하면서 ‘귀족노조’를 귀가 따갑도록 들먹였다.
새 대통령은 ‘친구 같은 대통령’을 말한다. 공허한 아는 척과 오만한 ‘지적질’은 이제 그만.
<국제부 이인숙 기자>-경향신문-
자신이 페미니스트라고 번쩍 손을 든 ‘퍼스트도터’ 이방카가 지난 2일 <일하는 여성: 성공의 법칙 다시 쓰기>라는 책을 냈다. 세 아이를 둔 엄마이자 잘나가는 사업가로서 ‘워킹맘’들에게 전하는 성공의 조언을 담은 책이다. 누군가는 부러워 책을 사볼지 모르겠지만 책에 대한 평가는 혹평 일색이다.
뉴욕타임스 북리뷰는 “온갖 영감을 주는 명언으로 범벅이 된 딸기 밀크셰이크”라고 표현했다. 실제 이방카의 책은 소크라테스, 마하트마 간디, 넬슨 만델라, 제인 구달 등 명사의 말로 가득하다. 구달은 “내 말을 진심으로 이해했길 바란다”고 뼈 있는 충고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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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같은 말씀이 겉도는 이유는 그와 어우러진 이방카의 공허한 경험 때문이다. 그는 “대선 기간에 너무 바빠 마사지도 받지 못했고 매일 아침 20분씩 하던 명상을 할 시간도 없었다”고 토로한다. 또 육아휴직을 하는 엄마들에게 “믿을 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서 당신이 떠난 자리를 지키게 하라”고 조언한다. 부동산 재벌의 딸로 태어나 7억4000만달러(약 8300억원)를 가진 자산가이자 아랫사람에게 언제든 일을 맡기고 언제든 사무실로 돌아올 수 있는 트럼프그룹 부회장이니 가능한 얘기다. 성평등 운동가인 파티마 고스 그레이브는 “아무리 드라이브를 하고 화창한 해변에 놀러 나가도 집세와 밥값을 벌기 위해 분투하는 두 자녀 엄마의 삶의 무게가 덜어지지는 않는다”고 꼬집었다.
경험은 공감의 자양분이다. 그러나 겪어봤다고 공감할 줄 아는 건 아니다. 진짜 공감은 내 경험에 대한 성찰, 다른 이의 경험에 대한 존중에서 시작된다. 이게 빠진 경험은 상처를 주는 독이 되기도 한다. 이방카의 ‘워킹맘’ 운운이 울림이 없는 이유, 차라리 어설프게 아는 척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메르켈의 말이 더 와닿는 이유다.
우리에게도 ‘내가 해봐서 다 안다’고 입버릇처럼 ‘노오력’을 말하던 대통령이 있었다. 찢어지는 가난에 고학으로 성공한 그는 시장에서 어묵을 먹고 청년들에게 실업타개책으로 “눈높이를 낮추라”고 말했다. 심지어 그런 경험도 없는 또 다른 대통령은 ‘아버지가 해봐서 안다’며 ‘한강의 기적’을 말하고 청년들에게 “중동에 가라”고 했다. 올해 대선에 나왔던 어떤 후보는 경비직 아버지와 까막눈 어머니를 앞세워 서민대통령을 자처하면서 ‘귀족노조’를 귀가 따갑도록 들먹였다.
새 대통령은 ‘친구 같은 대통령’을 말한다. 공허한 아는 척과 오만한 ‘지적질’은 이제 그만.
<국제부 이인숙 기자>-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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