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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모든 영화는 액션 영화이고, 영화의 본질은 움직이는 이미지다

얼마 전 개봉한 <트랜스포머 5: 최후의 기사>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치장된 변신 로봇들의 화려한 액션은 관객의 뇌 세포 속에서 ‘쾌락의 도파민’이 마구 쏟아지는 ‘스펙터클의 미학’을 선사한다. 웅장한 굉음과 함께 질주하는 자동차, 눈깜짝할새 로봇으로 변신하는 기술적 경이로움, 하늘높이 치솟는 진기한 비행기와 우주선들, 로봇과 인간들의 스피디한 대결과 폭력적 전쟁의 난무 속에 통쾌한 심리적 카타르시스 등 이 영화는 액션 블록버스터의 시각적 쾌락을 화려하게 전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랜스포머 5: 최후의 기사>의 스토리 구조와 액션 장면들은 어쩐지 진부하고 식상해 보인다. 무려 2억6000만불이라는 시리즈 사상 최대의 제작비에 98%의 장면을 IMAX 3D로 촬영한 작품치고는 별로 새롭지도 놀랍지도 않다. 그도 그럴것이, 이미 2007년 이래 10년동안 5편의 <트랜스포머> 시리즈 속에서 비슷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의의 군단 오토봇과 악의 무리 디셉티콘이 싸우는 선악대립의 이분법, 옵티머스 프라임과 범블비라는 기계 영웅들의 변함없이 인간적인 투쟁, 화려한 컴퓨터 그래픽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카레이스와 전투 장면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인간 세상을 지켜주는 오토봇의 승리라는 안정된 결말, 언제나 영화는 극단적 앙각으로 촬영된 옵티머스 프라임의 굵고 위엄있는 목소리와 함께, 다음 시리즈를 예고하는 쿠키 영상으로 막을 내린다. 이처럼 비슷한 패턴을 10년 동안 반복하다보니, 더 이상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새롭고 진기한 무언가를 주지 못한다.

영화의 액션 스펙터클이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서사적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그럴듯한 이야기 구조 속에서만 시각적 볼거리가 빛을 발할 수 있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우주 기계 종족이 자신의 별 사이버트론을 재건하기 위해 지구를 무대로 선악 대결을 펼친다는 기본 스토리라인을 견지한다. 이러한 스토리라인은 2편에서 이집트 피라밋을 무대로, 3편에서 달 탐사 이야기로, 4편에서는 백악기 공룡시대를 배경으로, 5편에서는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 신화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이러한 스토리의 변주가 역사적 사실의 왜곡과 짜깁기를 통해 무리하게 전개된다는 점이 문제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스토리텔링의 설득력에 별로 큰 관심이 없다.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서사적 완결성보다는 스펙터클의 화려한 전시에 집중한다. 대규모 제작비를 투자한 액션 스펙터클을 통해 대중의 환호와 흥행을 이끌어내는 것이 이 영화들의 최대 목적이다. 디지털 테크놀러지가 보여주는 현란한 무대장치와 프로덕션 디자인, 영상의 빠른 편집과 몽타쥬, 웅장한 사운드, 스타 이미지와 자극적 캐릭터 구축, 숨쉴틈없는 스펙터클 액션 등을 통해 할리우드는 관객들에게 즐거운 환영과 오락을 선사한다.

일찍이 프랑스 사상가 기 드보르는 현대사회가 ‘스펙터클의 사회’라고 갈파했다. 중요한 것은 서사의 진중함이 아니라 보여지는 이미지다. 이처럼 전도된 현실 속에서,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모든 영화는 액션 영화이고, 영화의 본질은 움직이는 이미지다. 그렇다면, 할리우드 문화 자본의 압도적 영향력 아래, 오늘날 영화가 액션 블록버스터와 스펙터클의 길로 나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대세인가? 빈약한 서사와 화려한 스펙터클의 기이한 조합에도 불구하고, 10년 동안 변주되고 있는 <트랜스포머> 시리즈는 영화의 새로운 길에 대한 역설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경향신문 <정헌 중부대 교수·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