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총수들은 정치권력 앞에만 서면 무섭다고 징징대며, 기업은 권력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와 직결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문제가 없었다면 삼성이 최순실에게 그렇게까지 굴욕적인 행동을 했을지 의문스럽다. 롯데나 SK도 결국 기업의 오너들이 약점을 잡혀 부패한 정치권력에 이용당했다. 즉, 기업의 불법행위나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승계에서의 부정행위를 무마하기 위해 기업은 정치권력에 뇌물을 제공하고 기꺼이 ‘을’의 역할을 한 것일 뿐이다. 이는 기업의 오너들과 기업을 일체로 여기고 오너가 살아야 기업이 생존할 수 있다는 왜곡된 인식에서 출발한다.
1953년 하워드 보웬의 <경영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책에서 시작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1960년대에 시민, 소비자, 친환경, 여성권리 운동 등 사회의식의 변혁을 초래하면서 함께 성장해 왔다. 기업은 이윤추구와 법 준수 이상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국제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나아가 2011년 마이클 포터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제창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이윤추구를 동시에 이루는 ‘공유가치창출경영’(CSV)이 CSR의 발전된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 CSR의 개념을 발전시킨 저명한 학자인 아치 캐럴은 2015년 연구에서 기업과 사회의 관계 개선, 비용 감소, 혹은 성공한 기업 모방 등의 다양한 동기로 인해 ‘포천’ 500대 기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CSR을 높은 수준으로 실천하고 있으며, 미래에도 CSR은 기업의 중요한 어젠다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영향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노동시장의 붕괴로 인한 불평등의 증가와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예측했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회장인 클라우스 슈바프는 소비자의 기업 활동에 대한 관여와 기업정보의 투명성이 증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어떤 변화를 야기할지 좀 더 논의가 필요하나, 사회와 공공이익을 위한 기업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불가피할 것이라 보인다. 따라서 기업은 미래지향적인 CSR, 나아가 CSV에 관련한 노력과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재벌기업들은 최순실에게 무릎을 꿇었다. 대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은 고사하고 불법적 행위로 부정부패 세력에 빌미를 제공해서 부정부패를 배 불리는 숙주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명한 국제 소비자연구 학술지에 실린 알렉산더 등의 2015년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그동안 CSR은 기업이 판매하는 제품의 질이나 기능과는 무관하며 기업의 평판을 개선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점이 보편적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연구는 CSR이 소비자의 제품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소비자는 직접 눈으로 확인한 똑같은 기능적 결과를 보이는 두 제품에 대해 CSR을 잘하는 기업의 제품이 더 나은 기능적 결과를 나타냈다고 착각했다. 기업의 CSR이 후광 효과의 역할을 해서 소비자의 제품에 대한 평가를 왜곡시킨 것이다. 즉, 소비자는 기업의 CSR에 대해 생각보다 큰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소비자의 CSR에 대한 관점이 바뀌어 CSR을 제품의 질과 직접적으로 결합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CSR은 단순한 평판이 아니라 평판적 자본으로 전환되어 직접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삼성은 그동안 우수한 제품을 판매해 왔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인해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 왔다. 이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형성했고, 소비자들은 브랜드 프리미엄을 지불해 왔다. 그런데 삼성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2016년 출시된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 폭발로 인한 리콜과 판매 중단은 소비자에게 어떻게 비칠까? 삼성같이 훌륭한 기업이 정말 예기치 못한 단 한번의 실수를 한 것으로 평가될까, 아니면 경영승계 문제로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고 부정부패의 숙주가 된 나쁜 기업이 일으킨 당연한 결과로 보일 것인가? CSR의 긍정적인 후광 효과가 있다면 나쁜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도 있을 것이다. 즉, 삼성이 나쁜 기업이라는 평판이 굳어지게 된다면 소비자는 삼성제품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할 것이고,결국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는 부정적이 될 것이다. 아직도 정경유착 등 부정적인 행위들이 기업의 제품이나 생사와는 관계없는 부차적인 문제들로 보이는가? 이런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정계와 법조계의 네트워크를 움직이고, 며칠 전부터 불거지는 ‘삼성의 1조원 기부설’에서 보여지듯 돈으로 덮을 수 있는 부수적인 문제로 여겨지는가?
정경유착 문제에서 ‘권력이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하는 힘없는 존재’라는 구차한 변명을 지겹게 되풀이하는 재벌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저항에 참여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의 행동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소비자와 사회의 변화를 읽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재벌 총수들의 변명은 29년 전이었던 1988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국민들은 1987년에는 독재와 부패에 저항하기 위해 화염병과 돌을 들었으나, 지금은 촛불을 들고 있다. 아직도 이 변화가 보이지 않는가?
<황금주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경향신문-
1953년 하워드 보웬의 <경영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책에서 시작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은 1960년대에 시민, 소비자, 친환경, 여성권리 운동 등 사회의식의 변혁을 초래하면서 함께 성장해 왔다. 기업은 이윤추구와 법 준수 이상의 사회적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국제적으로 공유되고 있다. 나아가 2011년 마이클 포터가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서 제창한, 사회적 가치와 경제적 이윤추구를 동시에 이루는 ‘공유가치창출경영’(CSV)이 CSR의 발전된 형태로 논의되고 있다. CSR의 개념을 발전시킨 저명한 학자인 아치 캐럴은 2015년 연구에서 기업과 사회의 관계 개선, 비용 감소, 혹은 성공한 기업 모방 등의 다양한 동기로 인해 ‘포천’ 500대 기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기업들이 CSR을 높은 수준으로 실천하고 있으며, 미래에도 CSR은 기업의 중요한 어젠다가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요즘 화두가 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영향에 대해 경제학자들은 노동시장의 붕괴로 인한 불평등의 증가와 이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예측했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회장인 클라우스 슈바프는 소비자의 기업 활동에 대한 관여와 기업정보의 투명성이 증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4차 산업혁명이 어떤 변화를 야기할지 좀 더 논의가 필요하나, 사회와 공공이익을 위한 기업의 역할에 대한 기대는 불가피할 것이라 보인다. 따라서 기업은 미래지향적인 CSR, 나아가 CSV에 관련한 노력과 준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재벌기업들은 최순실에게 무릎을 꿇었다. 대기업들이 사회적 책임은 고사하고 불법적 행위로 부정부패 세력에 빌미를 제공해서 부정부패를 배 불리는 숙주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저명한 국제 소비자연구 학술지에 실린 알렉산더 등의 2015년 연구는 흥미로운 결과를 보여준다. 그동안 CSR은 기업이 판매하는 제품의 질이나 기능과는 무관하며 기업의 평판을 개선하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점이 보편적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연구는 CSR이 소비자의 제품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결과를 보여준다. 소비자는 직접 눈으로 확인한 똑같은 기능적 결과를 보이는 두 제품에 대해 CSR을 잘하는 기업의 제품이 더 나은 기능적 결과를 나타냈다고 착각했다. 기업의 CSR이 후광 효과의 역할을 해서 소비자의 제품에 대한 평가를 왜곡시킨 것이다. 즉, 소비자는 기업의 CSR에 대해 생각보다 큰 기대를 가지고 있으며, 소비자의 CSR에 대한 관점이 바뀌어 CSR을 제품의 질과 직접적으로 결합시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CSR은 단순한 평판이 아니라 평판적 자본으로 전환되어 직접적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삼성은 그동안 우수한 제품을 판매해 왔다는 긍정적인 평가로 인해 좋은 브랜드 이미지를 쌓아 왔다. 이는 브랜드에 대한 신뢰를 형성했고, 소비자들은 브랜드 프리미엄을 지불해 왔다. 그런데 삼성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의 신뢰에 조금씩 금이 가고 있다. 2016년 출시된 갤럭시노트7의 배터리 폭발로 인한 리콜과 판매 중단은 소비자에게 어떻게 비칠까? 삼성같이 훌륭한 기업이 정말 예기치 못한 단 한번의 실수를 한 것으로 평가될까, 아니면 경영승계 문제로 국민연금에 손해를 끼치고 부정부패의 숙주가 된 나쁜 기업이 일으킨 당연한 결과로 보일 것인가? CSR의 긍정적인 후광 효과가 있다면 나쁜 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도 있을 것이다. 즉, 삼성이 나쁜 기업이라는 평판이 굳어지게 된다면 소비자는 삼성제품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할 것이고,결국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는 부정적이 될 것이다. 아직도 정경유착 등 부정적인 행위들이 기업의 제품이나 생사와는 관계없는 부차적인 문제들로 보이는가? 이런 문제들이 생길 때마다 정계와 법조계의 네트워크를 움직이고, 며칠 전부터 불거지는 ‘삼성의 1조원 기부설’에서 보여지듯 돈으로 덮을 수 있는 부수적인 문제로 여겨지는가?
정경유착 문제에서 ‘권력이 시키면 무조건 해야 하는 힘없는 존재’라는 구차한 변명을 지겹게 되풀이하는 재벌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반이민 행정명령 저항에 참여한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스타벅스 등의 행동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소비자와 사회의 변화를 읽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재벌 총수들의 변명은 29년 전이었던 1988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국민들은 1987년에는 독재와 부패에 저항하기 위해 화염병과 돌을 들었으나, 지금은 촛불을 들고 있다. 아직도 이 변화가 보이지 않는가?
<황금주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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