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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트럼프가 '코리아 패싱' 논란과 관련해 "한국은 내게 굉장히 중요한 국가다. 한국을 건너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북의 도발이 언제 재개될지 모르는 가운데 트럼프 미 대통령이 어제 국빈(國賓)으로 방한했다. 문재인·트럼프 두 정상이 첫 행사로 평택 캠프 험프리스를 찾은 것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해외 미군기지 중 가장 규모가 큰 이곳은 우리가 건설 비용 107억달러의 92%를 부담한 곳이다. 미군과 그들의 가족을 포함해 4만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험프리스는 한·미 동맹의 새로운 심볼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두 대통령은 한·미 양국의 군인들 앞에서 동맹의 굳건함을 재확인했다.

어제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세 척의 항공모함과 핵 잠수함이 한반도 인근에 배치돼 있다며 이를 실제로 사용할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했다. 김정은을 향해 북핵 폐기의 협상 테이블로 나오라는 강력한 경고다. 특히 트럼프가 '코리아 패싱' 논란과 관련해 "한국은 내게 굉장히 중요한 국가다. 한국을 건너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명확히 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트럼프는 통상(通商) 이슈를 공격적으로 제기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한·미 FTA 개정 협상이 신속하고 호혜적으로 진행돼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표명하는 데 그쳤다. 트럼프는 한·미 무역 적자는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한국 측이 한·미 FTA 개정 협상에 응한 데 대해 감사를 표시했다. 일본 방문에서 자동차 등의 분야를 구체적으로 거명하면서 "일본과의 무역은 공정하지도, 열려 있지도 않다"고 강력한 통상 공세를 펼친 것과 대조적이었다. 다만 그는 '경제' '교역'이란 단어를 '안보' '북한'보다 앞에 사용해 앞으로 통상 압박이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어제 회담에 아쉬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두 정상의 회담은 단독 회담, 확대 회담을 합쳐서 총 55분에 그쳤다. 통역 시간을 빼면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다. 트럼프는 우리를 "단순한 오랜 동맹국 그 이상"이라고 했다. 그가 도쿄 방문 때 일본을 '보물 같은 파트너이자 핵심 동맹국'이라고 부른 것과는 비교되는 것이 사실이다.

트럼프는 한국에서 수십억달러에 이르는 군사 장비를 주문할 것이라며 이를 미국의 일자리 창출과 연결시켰다. 미국의 첨단 무기 체계는 한국이 필요해서 사는 것이다. 미국은 무기를 돈 준다고 함부로 파는 나라도 아니다. 그런 점에서 동맹 사이에서 이런 군사 문제를 기업 영업식으로 공개 언급하는 것은 설사 그것이 미국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한 발언이라고 해도 적절하지 않고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동맹국이 언제나 필요할 때 옆에 있을 것이라고 속단해서는 안된다. 언제라도 틀어질 수 있는 것이 동맹 관계다. 한·미 동맹은 1953년 체결된 후 한반도를 넘어 동북아 평화를 지키고, 대한민국의 기적적 발전을 뒷받침했다. 이 동맹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매일 정원을 돌보듯 세심한 배려와 정성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이 회견에서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 외교 하겠다는 게 아니다"라고 최근 논란이 된 자신의 발언을 해명한 것은 다행이었다.

앞으로 북핵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결국 한·미 동맹을 시험하는 단계에 이를 것이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지금 이 순간, 그리고 앞으로 상당한 미래에까지 한·미 동맹 이상으로 한반도 평화와 대한민국의 발전을 지켜줄 방파제는 있을 수 없다. 누구도 어설픈 이념과 섣부른 계산으로 이 방파제에 금이 가게 해선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방한은 한·미 동맹에 대한 여러 불안한 시각을 불식시키는 새로운 출발점이 돼야만 한다.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