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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트위터에 문 대통령이 자신을 위해 마련한 '아름다운 환영식에 감사한다'는 글과 4분 남짓한 환영식 동영상

'실패한 정상회담은 없다.'

어제 한국 방문을 마치고 중국으로 떠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보면서 떠올린 외교의 속설(俗說)이다. 정상회담은 분(分) 단위, 초(秒) 단위 일정까지 서로 협의를 거친다. 회담에서 다루게 될 주제와 발언 수위, 표현도 대개 사전에 의논하는 것이 외교 관례다. 깜짝 일정, 즉석 합의는 정상회담의 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미리 공개하지 않았다는 뜻이지 정말 예정에 없던 일이 벌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5시간여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방한(訪韓)은 한·미 간에 치밀하게 조율된 외교 행사였다.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은 12일에 걸친 아시아 5개국 순방의 일환으로 이뤄졌다. 일본에서 시작해 한국을 방문하고 중국을 찾는 순서다. 미국 언론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에게 가장 편한 방문지는 일본이고, 중요도가 가장 높은 곳은 중국이다. 대신 한국은 '가장 어려운 회담이 될 곳'으로 꼽는 전문가들이 꽤 있었다. 커트 캠벨 전 국무부 차관보가 대표적인 경우다.

그러나 엊그제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어려운 협의를 하기에는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회담 시간은 모두 합쳐 55분이었다. 두 정상 간 단독 회담 25분, 두 나라 장관과 보좌진이 동석한 확대 회담 30분이었다. 5분 남짓한 청와대 경내 산책까지 합쳐도 두 정상이 본격적인 대화를 나눈 시간은 한 시간 남짓했다. 그 결과인지 한·미 정상회담이 최대 현안인 북핵에 대해 내놓은 해법은 기존 입장을 재확인하는 수준에 그쳤다.

한·미는 대신 두 정상이 함께 동맹의 건재함을 과시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방한 일정인 평택 미군 기지를 찾아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미군 장병들을 만난 것이나 중국발(發) 황사 때문에 성사되진 못했지만 한·미 정상이 함께 DMZ(비무장지대)를 찾으려 했던 것 등이 이런 목적에서 마련된 무대들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방한 행사를 반긴 듯하다. 그는 트위터에 문 대통령이 자신을 위해 마련한 '아름다운 환영식에 감사한다'는 글과 4분 남짓한 환영식 동영상을 함께 올렸다. 한국 정부가 꼭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도 마다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과 함께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문제에서)한국을 건너뛰는(skip)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